예언의 신 읽기:
   
   
   
   
   
   
   
   
   
     
 
 
 
 
   
13장 믿음의 시험
 

145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리라는 약속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으나, 하나님께서 그 정하신 시간과 방법대로 당신의 말씀을 성취시키시도록 기다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그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지체되는 일을 허락하셨으나 그는 그 시험을 견디는 데 실패하였다. 사라는 자신이 나이 많아 자녀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지도 모를 방법으로서 자신의 여종들 가운데 한 사람을 아브라함이 취하여 첩으로 맞이해야 한다고 제의하였다. 일부다처는 아주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어 버렸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는 일이었으며 가족 관계의 신성성과 평화에 치명적이었다. 아브라함과 하갈과의 결혼은 그의 가정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나쁜 결과를 빚어내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아내라는 새로운 지위를 얻은 영광에 우쭐하게 되고, 그의 후손으로 이루어질 큰 민족의 어미가 되리라는 것을 믿고 교만해져서 자신의 여주인을 멸시하였다. 서로의 질투는 한때 행복했던 가정의 평화를 어지럽혔다. 양쪽의 불평을 듣게 된 아브라함은 조화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였으나 헛수고였다. 하갈과 결혼한 것은 사라의 열렬한 간청에 의한 것이었으나 사라는 이제 잘못한 사람은 아브라함인 것처럼 그를 나무랐다. 사라는 그의 경쟁자를 쫓아내기를 바랐으나 아브라함은 이 일을 허락하기를 거절하였다. 왜냐하면 하갈은 그가 열망한 대로 약속의 아들인 자신의 아들의 어미가 되어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사라의 종이었으므로 아브라함은 그 여자를 사라의 수하에 두었다. 하갈의 거만한 정신은 자신의 무례한 태도가 초래한 호된 비난을 참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라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라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창 16:6~13 참고).

하갈이 광야로 가서 친구 없이 외롭게 한 샘물 곁에서 쉴 때에, 주의 천사가 인간의 모습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는 그 여자의 지위와 의무를 상기시켜 주기 위하여 “사라의 여종 하갈”이라고 말하면서 그 여자에게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명령하였다. 146 그러나 책망에는 위로의 말이 섞여 있었다.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그분의 자비하심을 영원히 생각나게 해줄 사람으로서, 그 여자는 자신의 아이를 이스마엘 곧 “하나님이 들으심”이라고 부르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브라함이 거의 백세가 되었을 때, 장래의 후사는 사라의 아들이어야 한다는 보증과 함께 아들에 대한 약속이 그에게 반복되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직도 그 약속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의 마음은 한때 이스마엘에게로 향하였고, 그는 이스마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이 성취될 것이라는 믿음에 집착하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애정으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부르짖었다. 다시 오해할 수 없는 말씀으로 약속이 주어졌다.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아버지의 기도에 무심하지 아니하셨다. 그분은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거의 평생을 두고 기다린 후에 얻은 그들의 가장 귀중한 소망의 성취인 이삭의 출생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장막을 기쁨으로 채웠다. 그러나 이 사건이 하갈에게는 그가 열망했던 야망의 좌절이었다. 이제 청년이 된 이스마엘은 진중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의 재산의 상속인이요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된 축복의 후사로 생각되어 왔다. 이제 그는 돌연 밀려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실망한 가운데 모자는 사라의 아들을 미워하였다. 일반 사람들의 기쁨은 그들의 질투심을 증가시켜 마침내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의 후사에 대하여 공공연한 조롱을 서슴지 않았다. 사라는 이스마엘의 불온한 성질이 영원한 불화의 근원이 될 것을 알고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진중에서 내보낼 것을 호소하였다. 부조는 큰 곤란에 빠졌다. 아직도 극진히 사랑하는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그가 어떻게 내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근심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간구하였다. 주께서는 한 거룩한 천사를 통하여 사라의 소원을 허락하도록 그에게 지시하셨다. 이것만이 그의 가정에 조화와 행복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스마엘이나 하갈에 대한 그의 사랑이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하였다. 그리고 그 천사는 비록 이스마엘이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떠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생명은 보존될 것이며 그는 큰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는 위안의 약속을 그에게 주었다. 147 아브라함은 천사의 말을 순종하였으나 거기에는 살을 에는 듯한 괴로움이 있었다. 그가 하갈과 자신의 아들을 내보낼 때, 아버지로서의 그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짓눌렸다.

결혼 관계의 신성함에 관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교훈은 각 시대를 통하여 교훈이 되어야 하였다. 그것은 결혼 관계의 권리와 행복은 비록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신중하게 보호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유일한 참 아내였다.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그의 권리는 다른 아무도 나누어 가질 자격이 없었다. 그 여자는 남편을 잘 공경하였으므로 이 일로 그 여자는 훌륭한 모본으로서 신약 성경 가운데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아브라함의 애정이 다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으며, 주께서도 사라가 자신의 경쟁자를 내쫓으라고 요구한 일에 대하여 그 여자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으니 이 과오가 하갈과의 결혼의 원인이었다.

하나님께서 충성된 자들의 조상이 되도록 아브라함을 부르셨으므로 그의 생애는 후대 사람들에게 신앙의 모본이 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그는 사라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감춤으로, 또 하갈과 결혼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나타내었다. 그로 가장 높은 표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사람이 견디도록 부름을 받은 시험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든 다른 시험을 당하게 하셨다. 아브라함은 밤의 이상 중에, 모리아 땅으로 가서 그에게 보여 주게 될 산에서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명령을 받을 때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120세였다. 그는 그의 세대에서도 노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어려운 일도 견디고 위험한 일도 용감하게 밀고 나갈 만큼 굳센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청춘의 열정도 사라져 버렸다. 무덤을 향하여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놓는 노년에는 낙담케 할 곤란과 고통도 성년의 활력이 왕성할 때에는 용감하게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노령의 짐이 그를 짓눌러서 그가 걱정과 수고에서 쉬기를 바랄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혹독한 시험이었던 당신의 마지막 시험을 보류하셨다.

부조는 번영과 명예를 누리며 브엘세바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매우 부요하였으며 그 땅의 통치자들로부터 유력한 군주로 존경을 받고 있었다. 수천의 양과 가축이 그의 장막 저편에 펼쳐진 평야들을 뒤덮고 있었다. 사방에는 그의 가신(家臣)들의 장막, 곧 수백 명의 충성된 종들의 집들이 있었다. 약속의 아들은 장성하여 성년이 되어 그의 곁에 있었다. 하늘은 지연된 소망을 참을성 있게 기다린 희생의 생애를 축복으로 관 씌운 것처럼 보였다.

148 믿음으로 순종하여, 아브라함은 그의 고국을 버렸으며 선산(先山)과 친족이 사는 고향을 떠나왔다. 그는 자신의 유업의 땅에서 나그네처럼 방황하였다. 그는 약속된 후사의 출생을 오래 기다렸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는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보냈다. 그런데 이제 그처럼 오랫동안 소망했던 아들이 성년이 되어가고 있었을 때, 그리하여 부조가 그의 소망의 결실을 식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을 때, 그의 앞에는 다른 모든 시험보다도 훨씬 더 큰 시험이 이르러 왔다.

그 명령은 그 아버지의 마음을 고통으로 찢어지게 했음에 틀림이 없었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되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번제로 드리라”(창 22:2). 이삭은 그의 가정의 빛이요, 그의 노령의 위로요, 다른 모든 것보다도 약속된 축복의 후사였다. 그런 아들을 사고나 질병으로 잃는다 해도 사랑하는 아버지에게는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었을 것이요, 백발이 된 그를 슬픔에 잠기게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친히 자신의 손으로 그 아들의 피를 흘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은 그에게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거룩한 율법에 “살인하지 말지니라”고 했으며 또 하나님께서는 일단 당신께서 금하신 바를 요구하실 리가 없으므로, 그는 틀림없이 속임을 당하였을 것이라고 사단은 곁에서 암시하였다. 아브라함은 장막 밖으로 나가 맑게 개인 고요한 하늘의 광채를 우러러보며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으리라던 근 50년 전의 약속을 회상하였다. 만일 이 약속이 이삭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그가 죽임을 당할 수 있을까? 아브라함은 자신이 기만을 당했을 것이라고 믿도록 유혹을 받았다. 의심과 고민 중에 그는 땅에 엎드려 이 무서운 의무를 수행해야 할 것인지, 주어진 명령의 확실성을 알고자 이전에 결코 그같이 해본 적이 없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그는 소돔을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그에게 보여 주도록 보내심을 받은 천사들, 바로 이 아들 이삭에 관한 약속을 전달한 천사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만나 더 자세한 지시를 받을 희망을 품고 여러 번 하늘의 사자들을 만났던 곳으로 가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구원하러 오지 않았다. 암흑이 그를 에워싼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데리고”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의 귀에 쟁쟁히 울리고 있었다. 그 명령에 순종해야 했으므로 그는 감히 지체할 수 없었다. 날이 밝아오므로 그는 여행길에 올라야 하였다.

장막으로 돌아온 그는 이삭이 깊은 잠, 곧 아무것도 모르고 젊음의 단잠을 자고 있는 곳으로 갔다. 151 아버지는 잠시 그의 아들의 사랑스런 얼굴을 바라본 후 떨면서 돌아섰다. 그는 사라 곁으로 갔는데, 그녀도 자고 있었다. 사라를 깨워서 한 번 더 그의 아들을 안아 보도록 해야 할까? 하나님의 요구를 그에게 말해야 할까? 그는 마음을 그에게 털어놓고 이 무서운 의무를 그와 분담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사라가 자신의 일을 방해할까봐 두려워서 자제하였다. 이삭은 그녀의 기쁨과 자랑이었고 그녀의 생명은 그와 결탁되어 있었으므로 모성애가 그 희생을 거절할지도 몰랐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을 불러 먼 산에서 희생을 드리라는 명령에 대하여 그에게 말하였다. 이삭은 종종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유랑 생활을 말해 주는 어떤 제단들에 예배하러 갔었음으로 이 부름이 아무런 놀라움을 주지 않았다. 여행 준비는 빨리 끝났다. 나무는 준비되어 나귀에 실렸고 그들은 두 하인과 함께 출발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은 나란히 서서 말없이 여행하였다. 아브라함은 엄청난 비밀에 대한 생각으로 말할 마음이 없었다. 그는 아들을 자랑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와 또 그가 혼자 그 여자에게로 돌아가야 할 날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칼이 그 여자의 아들의 생명을 끊을 때에 그것이 그 여자의 가슴을 찌르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아브라함이 여태껏 경험했던 것 가운데 가장 길었던 그 하루는 천천히 저물어 갔다. 그의 아들과 하인들이 자고 있는 동안에 그는 기도로 밤을 지새우며 아직도 어떤 하늘의 사자가 찾아와서 시험은 이것으로 넉넉하며, 청년은 아무런 해를 받지 않고 그의 어머니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고통당하는 영혼에게는 구원이 이르러 오지 않았다. 또 긴 하루와, 겸비와 기도의 밤이 지나갔으나 그를 무자(無子)하게 만들게 될 명령만이 그의 귀에 쟁쟁하였다. 사단은 가까이서 의심과 불신을 속삭이었으나 아브라함은 그의 암시들을 물리쳤다. 그들이 셋째 날의 여행을 시작하려고 하였을 때 북쪽을 바라보던 아브라함은 약속의 표인 영광의 구름이 모리아 산 위에 배회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신에게 말한 음성이 하늘에서 온 것임을 알았다.

지금도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고 주의 선하시고 진실하신 증거를 생각함으로 그의 영혼을 강건하게 하였다. 이 아들은 예기치 않게 주어졌으니 귀중한 선물을 주신 분께서 당신 자신의 것을 다시 취하실 권리가 없으시겠는가? 그 때 믿음은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는 약속 곧,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주시리라는 약속을 반복하였다. 이삭은 기적의 아들이었으니 그에게 생명을 준 능력이 그것을 다시 회복할 수 없겠는가? 보이는 것 저편을 바라보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히 11:19)하였다.

152 그러나 하나님밖에 아무도 그의 아들을 죽음에 내어 주는 아버지의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그 고별의 장면을 목격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5~8 참고)고 말하여 하인들을 뒤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나무는 제물이 될 이삭에게 지우고 아버지는 칼과 불을 가지고 그들은 함께 산꼭대기를 향하여 올라갔다. 이삭은 우리와 양떼가 없는데 어디서 제물을 구할 것인지 내심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마침내 그는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말하였다. 오! 이 얼마나 무서운 시험이었는가! “내 아버지여”란 사랑스러운 말이 얼마나 아브라함의 마음을 찔렀던가! 그러나 아직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은 그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하였다.

지정된 장소에 이르러 그들은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올려놓았다. 그 후에 아브라함은 떨리는 음성으로 하나님의 기별을 아들에게 알렸다. 이삭은 그의 운명을 알고 두려워하고 놀랐으나, 아무 저항을 하지 않았다. 이삭은 그렇게 하기로 선택했더라면 자신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격렬했던 삼 일간의 투쟁에 지쳐서 비탄에 빠진 노인은 혈기 왕성한 청년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유년 시절부터 즉시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훈련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이 자신에게 알려졌을 때 그는 자원해서 순종하였다. 그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나누어 가진 사람이었으므로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슬픔을 덜어 드리려고 애쓰며 그의 활기 없는 손을 북돋아 자신을 제단에 붙들어 매는 줄을 매게 했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눈물을 흘리고 마지막 포옹을 한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칼을 든다. 이 때 갑자기 그의 팔이 정지된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그를 부른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재빨리 대답한다. 또다시 음성이 들린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1~18 참고).

153 그 때 아브라함은 “한 숫양이…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재빨리 그 새 제물을 가져다가 그것을 “아들을 대신하여” 드렸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아브라함은 그 거룩한 곳에 “여호와 이레”, 곧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새 이름을 붙여 주었다.

모리아산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당신의 언약을 새롭게 하시고 엄숙한 맹세로써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앞으로 다가올 모든 세대를 통하여 받을 축복을 확증하셨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창 22:16~18)이니라.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의 행위는 불기둥처럼 서서 모든 후대의 하나님의 종들의 진로를 비추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기를 기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의심하려고 하였더라면 삼일 간의 여행 중에 이유를 따지고 하나님을 의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죽이는 것은 그로 살인자, 곧 제2의 가인으로 주목을 받게 하는 원인이 될 것이며, 그의 가르침이 거절과 멸시를 당하여 이웃 사람들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을 손상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이유를 제기할 수도 있었다. 그는 또한 나이를 이유로 순종의 의무에서 면제 되어야 한다고 간청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느 것을 핑계로 피난처를 찾고자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도 인간이었고 그의 애정과 애착도 우리의 그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이삭이 죽임을 당하면 약속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아픈 마음을 구실로 이유를 따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요구에 있어서 공평하고 의로우심을 알고 명령을 문자 그대로 순종하였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약 2:23). 바울은 말하기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갈 3:7)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행위로 나타났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느니라”(약 2:21, 22).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라 그러면 그대는 안전하다. 그대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154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순종을 통해 나타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요 8:39)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충실한 자들의 조상에 관하여 주께서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창 26:5)고 선언하신다. 사도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고 말한다. 그리고 그처럼 철저하게 사랑을 강조한 요한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예표와 약속을 통하여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갈 3:8)셨다. 그러므로 그 부조의 믿음은 오실 구주에게 고정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고 말씀하셨다.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려진 어린양은 우리 대신 희생당하시기로 되어 있던 하나님의 아들을 대표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여 죽을 운명에 처했을 때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쳐다보며 죄인에게 “살라. 내가 대속물을 찾았노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동시에 복음의 실재를 그의 마음에 새겨 주기 위함이었다. 그 무서운 시련의 어두운 날 동안 그가 참은 고통은 그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속하기 위하여 치르신 희생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려고 허락되었다. 아무 다른 시험도 그의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것과 같은 영혼의 고통을 아브라함에게 일으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고통과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도록 내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의 치욕과 영혼의 고뇌를 목격한 천사들은 이삭의 경우처럼, 중재하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족하다”라고 부르짖는 어떤 음성도 없었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려고 영광의 왕께서 당신의 생명을 포기하셨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동정과 사랑에 대하여 이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주어질 수 있겠는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아브라함에게 요구된 희생은 그 자신의 유익이나 후대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다른 세계들의 무죄한 지적 존재들을 교훈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싸움터, 곧 구속의 경륜이 실현되는 장소는 우주의 교과서이다. 155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부족을 나타냈기 때문에 사단은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 그가 언약의 조건을 따르지 못하였다고 비난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그를 고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온 하늘 앞에서 당신의 종의 충성심을 증명하여 완전한 순종만이 받으시는 바 된다는 것을 나타내며 구속의 경륜을 그들 앞에 더욱 완전하게 밝히고자 하셨다.

하늘의 존재들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이삭의 순종이 시험당하던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 시험은 아담에게 주어진 것보다 훨씬 더 혹독하였다. 우리의 첫 조상에게 주어진 금령을 순응하는 데는 고통이 따르지 않았으나 아브라함에게 하신 명령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희생이 요구되었다. 온 하늘은 아브라함의 확고부동한 순종을 경이와 감탄 가운데 바라보았다. 온 하늘은 그의 충성됨을 칭찬하였다. 사단의 고소가 거짓됨이 드러났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사단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선언하셨다. 다른 세계의 지성들 앞에서 맹세로써 아브라함에게 확증된 하나님의 언약은, 순종은 보상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천사들까지라도 구속의 오묘,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늘의 사령관께서 범죄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이 내렸을 때, 온 하늘 존재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들은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이 명령이 성취되는 매 단계를 주시하였다.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라는 이삭의 물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하였을 때,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막 죽이려는 찰나 그의 손이 멈추어지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어린양이 이삭 대신에 드려졌을 때, 바로 그 때 구속의 신비 위에 빛이 비쳤으며, 천사들도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놀라운 준비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였다(벧전 1:12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