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신 읽기:
   
   
   
   
   
   
   
   
   
     
 
 
 
 
   
61장 사울이 버림을 받음
 

627 사울이 길갈의 어려운 처지에서 믿음의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욕되게 하였으나 그의 과오는 전혀 회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당신의 말씀을 의심치 않고 믿는 신앙과 당신의 명령을 순종해야 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는 다른 기회를 허락하시고자 하셨다.

사울은 길갈에서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 때에 그가 행한 행위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고 느끼고 자기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기의 잘못을 변명하였다. 그 때 후로 사울은 선지자와 거의 교제하는 일이 없었다. 사무엘은 사울을 자기의 아들처럼 사랑하였으며 성질이 대담하고 격렬한 사울도 사무엘을 몹시 존경하였으나 그의 책망에 분노하여 그 때부터 할 수 있는 대로 그를 피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다른 기별을 주어 사울에게 보내셨다. 사울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성실성과 이스라엘 앞에서 행할 그의 유용성을 아직도 증거할 수 있었다. 사무엘은 왕에게 나아와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였다. 사무엘은 왕이 그 명령에 주의하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사울을 왕이 되도록 부르신 동일한 권위로 말한다는 사실을 뚜렷이 했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고 하였다. 아말렉 사람들은 광야에서 제일 먼저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걸어 온 자들이었다. 이러한 죄와 아울러 그들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비열한 우상숭배에 빠진 죄로 인하여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형벌을 선고하셨다.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잔인하게 행한 역사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신 25:19)는 명령과 함께 책에 기록되었다. 628 이 선고의 집행을 4백 년 동안 연기하였으나 아말렉 사람들은 저희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는 이 사악한 백성들이 할 수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당신의 백성과 당신께 드리는 예배를 말살하고자 한다는 것을 아셨다. 이제 그처럼 오랫동안 지체된 형벌을 집행할 시간이 이르렀다.

악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담대하게 죄를 행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형벌은 오래 참으셨기 때문에 더 확실하고 더 무서울 것이다.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 일을 행하시리니 그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 공을 이루시리니 그 공이 기이할 것임이라”(사 28:21).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형벌하는 일은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겔 33:11).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고…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신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출 34:6, 7)으신다. 여호와께서는 복수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시지만 그러나 당신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는, 지상의 거민들을 완전한 타락과 파멸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형벌을 집행하실 수밖에 없으시다.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죄에 굳어진 자들을 끊어 버려야만 하셨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나 1:3). 여호와께서는 정의를 위하여 짓밟힌 당신의 율법의 권위를 무섭게 옹호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어쩔 수 없어서 형벌을 집행하실 수밖에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 당신의 형벌을 초래한 죄가 얼마나 크고, 범죄자를 기다리고 있는 보응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증거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형벌을 주시면서도 자비를 기억하셨다. 아말렉 사람들을 멸하는 마당에서도 그들 중에 거하는 겐 사람을 구하셨다. 이 백성은 완전하게 우상숭배를 버리지도 않았으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었고 이스라엘과 친한 자들이었다. 이 족속 중에 모세의 처남 호밥이 있었는데 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를 여행하였고, 그가 그 곳 지리를 잘 알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중한 도움을 주었었다.

사울은 믹마스에서 블레셋 사람들을 패배시킨 이후에 모압과 암몬과 에돔, 아말렉과 블레셋으로 더불어 전쟁을 하였으며 군사들을 이끌고 가는 곳마다 새로운 승리를 거두었다. 629 아말렉과 더불어 싸우라는 사명을 받자 사울은 즉시 전쟁을 선포하였다. 사울 자신의 권위에 선지자의 권위가 첨가되었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에 나오라는 부름을 듣고 그의 깃발 아래 운집하였다. 이 원정은 자신들의 세력 부식의 목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복의 영예나 원수의 노획물이나 아무것도 취하지 말아야 하였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행위로써 참전해야 하였으니, 이는 아말렉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벌을 집행하는 것이 그 목적인 까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이 당신의 주권을 모독한 그 백성들의 운명을 바라볼 수 있도록, 저희가 멸시하던 바로 그 백성에게 멸망을 당하도록 하셨다.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아말렉 사람을 이긴 이번 승리는 사울이 이제까지 얻은 승리 중 가장 빛나는 승리였고, 이것은 그의 최대의 위험인 교만심을 다시 불붙게 하였다. 하나님의 원수들을 완전히 멸하라는 거룩한 칙령은 부분적으로만 성취되었다. 사울은 왕을 사로잡아 오는 주위에 있는 민족들의 풍습을 모방하여 승리의 영예를 높이려는 야심으로 사납고도 호전적인 아말렉의 왕 아각을 살려 두었다. 백성들은 양떼와 소떼와 짐 나르는 짐승 중 가장 좋은 것을 살려서 남겨 두고, 이 짐승들은 여호와께 제물로 드리려고 남겨 두었다는 구실로써 저희 죄를 변명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그것들을 자신들의 가축을 아끼기 위한 대용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사울은 이제 마지막 시험에 굴복당했다. 그는 외람되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군주로서 통치하려는 결심을 보임으로써 여호와의 대리자로서 왕권을 맡을 수 없음이 판명되었다. 사울과 그의 군대가 승리의 감격에 도취되어 집을 향해 행진해 오고 있는 때에 선지자 사무엘은 큰 고민에 싸여 있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로부터 왕의 행위를 탄핵하는 기별을 받았다. 630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 15:11). 선지자는 반역적인 왕의 행동에 대하여 크게 슬퍼하였고 밤새도록 그 무서운 선고가 철회되도록 울며 기도하였다.

하나님의 후회는 인간의 후회와 같지 아니하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 인간의 후회는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고 하나님의 후회는 환경과 관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응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고, 또 자신의 행위로써 자기 자신을 은총을 받을 수 없는 곳에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히 13:8) 동일하시다. 사울이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었으나 하나님께 가납하심을 받는 조건은 변치 않았고 하나님의 요구는 여전히 동일했다. 이는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약 1:17) 까닭이다.

선지자는 괴로운 마음으로 다음날 아침에 범죄한 왕을 만나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 사무엘은 사울이 그의 죄를 깨닫고 회개와 겸비함으로 다시 여호와의 은총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범죄의 길에 첫 발걸음을 내디디면 그 다음의 범죄는 한층 더 쉬워지게 된다. 불순종으로 타락한 사울은 거짓 입술로 사무엘을 맞으러 나아왔다. 사울은 “원컨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고 외쳤다.

선지자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불순종하는 왕의 진술이 거짓임을 입증하였다.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라는 날카로운 질문에 사울은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고 대답하였다. 백성들은 사울의 지시에 따라 행하였으나 사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기의 불순종의 죄를 백성들에게 전가시키려 하였다.

사울이 버림을 받았다는 기별은 사무엘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이 기별을 온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전달해야 하였다. 그 때에 그들은 왕의 용맹과 통솔력 덕분에 승리했다는 자부심과 기쁨에 도취되어 있었는데, 이는 사울이 이번 전쟁에서 얻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하나님께 돌리지 않은 까닭이었다. 631 그러나 선지자는 사울의 반역의 증거를 보았을 때에, 그처럼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었던 자가 하늘의 계명을 범하고 이스라엘을 죄악으로 인도한 사실에 대하여 분개하였다. 사무엘은 왕의 궤변에 기만당하지 않았다. 슬픔과 분노에 뒤섞인 사무엘은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지 아니하셨나이까? 라고 선언하였다. 사무엘은 아말렉에 관한 여호와의 명령을 되풀이해 말하고 왕이 불순종한 이유를 힐문하였다.

사울은 고집스럽게 자신을 정당화하였다.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를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선지자는 엄격하고 엄숙한 말로 거짓말의 은신처를 쓸어버리고 변경할 수 없는 선고를 내렸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음으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이 무서운 선고를 듣고 왕은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고 부르짖었다. 선지자의 탄핵을 두려워한 사울은 전에 완강히 부인하던 죄를 인정하였으나 여전히 백성들을 무서워함으로 범죄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백성들을 비난하기를 고집했다.

이스라엘 왕이 사무엘에게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라고 간청한 것은 죄를 슬퍼함에서가 아니요 그 형벌을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만일 사울이 진정으로 회개하였더라면 그의 죄를 공공연하게 자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최대의 염려는 자기의 권위를 유지하고 백성들의 충성을 받는 것이었다. 그는 국민에 대한 자신의 세력을 굳게 하기 위하여 사무엘이 임석하는 영예를 갈망하였다.

632 선지자는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떠나려고 돌아설 때에 두려움과 고민 중에 있던 왕은 사무엘의 겉옷을 붙잡았다. 그러자 옷이 찢어지고 말았다. 이것을 보고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고 선언하였다.

사울은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보다도 사무엘이 그를 멀리하는 것을 더욱 불안하게 여겼다. 사울은 백성들이 자기보다도 선지자를 더 크게 신뢰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울은 만일 하나님의 명령으로 다른 사람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다면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만일 사무엘이 자기를 버린다면 즉시 반란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하였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백성들이 보는 데서 자기와 함께 예배를 드려 장로들과 백성들 앞에서 자기의 영예를 세워 달라고 간청하였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왕의 요구에 응하여 반란이 일어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사무엘은 조용히 그 예배를 목격하기만 하였다.

공의의 재판이 단호하고 무섭게 수행되어야 하였다. 사무엘은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명예를 옹호하고 사울의 행위를 견책하여야 했다. 사무엘은 아말렉 왕 아각을 그의 앞으로 이끌어 오라고 명하였다. 아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검으로 멸한 모든 사람들보다 더 죄가 많고 무자비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미워하여 멸하고자 한 자였고, 우상숭배를 성행시키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자였다. 아각은 내심으로 죽음의 위험은 지나간 것이라고 믿고 선지자의 명령에 따라 나아왔다. 사무엘은 “네 칼이 여인들로 무자케 한 것같이 여인 중 네 어미가 무자하리라”고 선언하고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이렇게 한 후 사무엘은 라마에 있는 그의 집으로 돌아가고 사울도 기브아 본집으로 갔다. 그 후에 선지자와 왕은 단 한 번밖에 서로 만나지 않았다.

사울은 왕으로 부르심을 받을 때에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였고 자진해서 배우려 하였다. 그는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였고 품성에 큰 결점들이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안내자와 조력자로서 성령을 그에게 허락하시고 이스라엘의 통치자로서 필요한 자질들을 계발할 수 있는 지위에 그를 두셨다. 만일 그가 그대로 겸손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지혜로써 인도함을 받기 원했더라면 그는 성공하고 명예롭게 그의 높은 지위에 지워진 의무를 잘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633 하나님의 은혜의 감화 아래서 모든 선한 자질은 힘을 얻는 한편 악한 성벽들은 그 힘을 잃었을 것이다. 이 일은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자신들을 성별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하시겠다고 제의하는 사업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겸손하고 순진한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당신의 사업의 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부르신 자들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당신을 배울 수 있는 곳에 그들을 두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품성의 결점을 나타내실 것이며, 당신의 도우심을 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힘을 주시고 그들의 과오를 시정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의 높음을 이용하고 불신과 불순종으로 하나님께 욕을 돌렸다. 처음 그가 왕으로 부르심을 입었을 때에는 겸손하고 자신을 의지하지 않았으나 성공한 후에는 자신을 의지하였다. 그의 치세의 최초의 승리가 그에게 가장 위험한 마음의 교만을 불붙게 하였다. 길르앗 야베스를 구원함에 있어서 나타낸 용맹과 전술(戰術)은 온 국민의 영광을 자아내었다. 백성들은 그가 다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일하시는 대리자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들의 왕에게 영광을 돌렸다. 비록 사울이 처음에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으나 후에는 자기가 스스로 영광을 취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떠났다. 그리하여 그가 길갈에서 오만과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할 수 있는 길을 준비하였다. 그의 이같은 맹목적인 자신감이 그로 사무엘의 책망을 거절하게 하였다. 사울은 사무엘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했으므로 비록 자기 자신이 범죄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할지라도 선지자의 책망을 받아들여야 하였다. 만일 사울이 그의 과오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 죄를 자복하고자 했더라면 이 쓰라린 경험은 장래를 위하여 방벽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여호와께서 그 때에 사울을 완전히 버리셨다면 그로 하여금 과거의 잘못을 시정할 수 있도록 선지자를 통하여 다시 그에게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이요, 그에게 수행해야 할 일을 맡기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부주의함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명령을 불경하게 하고 무관심하게 하는 감화를 끼친 때라도, 만일 그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참회로 책망을 받아들이고 겸손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한다면 아직도 그의 실패를 승리로 전환시킬 가능성이 있다. 가끔 패배의 굴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게 해주므로 축복이 된다.

사울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보내어진 견책에서 돌아서서 완고하게 자기의 주장을 고집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거절하였다. 634 사울은 고의로 하나님을 떠났다. 사울은 그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까지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지도를 받을 수 없었다.

사울은 길갈에서 이스라엘의 군대들 앞에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에 아주 양심적인 것처럼 행동하였다. 그러나 그의 경건은 순수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고 거행한 종교적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허락하시고자 하신 도움을 받지 못하게 하였고 오히려 사울의 손을 약하게 했을 뿐이었다.

아말렉 원정에 있어서도 사울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한바 필요되는 모든 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부분적 순종을 기뻐하시거나 그럴 듯한 동기로 그가 태만히 한 일을 묵과하지도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요구하신 바에서 마음대로 떠나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각기 소견대로…너희가…하지 말” 것이며,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신 12:8, 28)고 선언하신다. 어떤 행동을 결정할 때 그 결과가 자기에게 해로울 것인가를 묻지 말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희생 제물 그 자체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 가치가 없다. 희생 제물은 드리는 자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표현하고, 장차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겠다는 서약을 하도록 의도되었다. 그러나 참회와 믿음과 순종심이 없다면, 제물들은 아무 가치가 없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범하고 하나님께서 멸하도록 명하신 것을 제물로 드리자고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권위를 공공연히 멸시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 예배는 하늘을 모독하는 일이었다. 우리 앞에 사울의 죄와 그 결과가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와 동일한 길을 따라가고 있는가! 그들은 여호와의 요구하시는 바는 믿고 순종하기를 거절하면서도 형식적인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그와 같은 예배에는 하나님의 성령의 아무런 응답이 없다. 그들이 종교 의식을 준수하는 데 아무리 열성이 있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만일 고의로 당신의 명령 중 하나라도 범하기를 고집한다면 그들을 가납하실 수 없으시다.

635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반역은 본래 사단에게서 시작되었으며 하나님께 대한 모든 반역은 직접 사단의 감화 때문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반대하는 자들은 대반역자 사단과 동맹을 맺은 자들이며, 사단은 지각을 사로잡고 이해력을 그르치기 위하여 그의 능력과 간지(奸智)를 행사하고 있다. 사단은 모든 것을 올바로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최초의 부모 아담과 하와처럼 사단의 매혹케 하는 마력 아래 있는 자들은 죄를 범하면 큰 유익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와 같이 사단의 인도를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믿음으로 스스로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보다 사단의 기만적 능력에 대한 더 큰 증거는 없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모세의 권위에 대하여 반역했을 때에 그들은 다만 자신들과 같은 사람인 인간의 지도를 반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저희가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을 거절함으로 그리스도를 거절하였고 하나님의 성령을 모독하였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 시대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큰 열심이 있노라고 공언하던 유대의 서기관과 장로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와 동일한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고 자신들의 뜻을 따르고자 애쓰는 자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사울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었다. 그가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감히 무시한 것은 이성의 명령과 건전한 판단에 반대되는 일이었다. 사울의 치명적인 오만은 사단의 흉악한 마법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였다. 사울은 우상숭배와 사술을 진압하는 데 큰 열심을 나타냈으나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정신으로 행했고, 사술을 행하는 자처럼 사단의 감동을 받아서 책망을 받을 때에 더욱 완고하게 반역하였다. 만일 사울이 드러내 놓고 우상 숭배자들과 연합하였더라면 하나님의 성령을 그처럼 크게 모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당신의 영의 책망과 경고를 경시하는 것은 위험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사울처럼 유혹에 굴복하여 마침내 죄악의 진정한 성격에 대하여 눈멀게 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저희가 어떤 좋은 목적을 계획했고 여호와의 요구에서 떠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고 혼자 속으로 믿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은혜의 성령을 멸시함으로 마침내 성령의 음성을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고 저희가 선택한 기만에 빠져 버리게 된다.

636 길갈에서 나라를 확립시킬 때에 사무엘이 사울을 가리키며 “이제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을 보라”(삼상 12:13)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저희 마음에 맞는 사울을 왕으로 주셨다. 아름다운 신체와 큰 키와 군주다운 태도를 가진 사울의 외모는 왕의 품위에 대한 그들의 개념과 일치하였고, 군대를 통솔하는 그의 육체적 용맹과 능력은 저희가 다른 민족에게서 존경과 명예를 얻기에 가장 알맞다고 생각한 자격들이었다. 그들은 저희 왕이 공의와 공평으로 다스리기에 적합한 보다 큰 자격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들은 참으로 고상한 품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성별되고 거룩한 성격을 유지해 갈 통치자의 자격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권고를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방법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방법을 구하였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바라던 그와 같은 왕, 즉 그들의 품성을 닮은 왕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복종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의 왕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에 복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왕의 통치 아래서 저희의 과오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와 충성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얻어야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사울에게 나라의 책임을 맡기셨으나 그를 홀로 버려두시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시고 그에게 자신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를 보여 주셨다. 만일 사울이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셨을 것이다. 그의 뜻이 하나님의 뜻의 지배를 받고 그가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연단에 복종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노력에 성공의 영예를 주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사울이 하나님을 떠나 행동하기를 선택하였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더 이상 그의 지도자가 되실 수 없었고 그를 제거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 여호와께서는 “그 마음에 맞는 사람”(삼상 13:14)을 왕으로 부르셨는데 그는 품성에 결함이 없는 자가 아니었지만, 자신을 의지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지도를 받으며, 범죄했을 때에 견책과 징벌에 복종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