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신 읽기:
   
   
   
   
   
   
   
   
   
     
 
 
 
 
   
71장 다윗의 범죄와 회개
 

717 성경에는 사람들을 칭찬하여 말한 데가 거의 없다. 일찍이 세상에 산 가장 선한 사람들의 미덕까지도 자세하게 말해 주는 지면이 거의 없다. 이러한 침묵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우리가 알아야 할 교훈이 있다.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좋은 자질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들의 선한 행위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덕인 이상 그들의 위인(爲人)됨이 어떠하든지 무엇을 성취했든지 간에 그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쓰시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성경 역사의 교훈이 가르쳐 주는 것처럼 사람을 칭찬하거나 높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잘못하면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힘을 의지함으로 결국에 가서는 타락하게 되는 연고이다. 인류는 자기보다 강한 원수와 싸우고 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싸움을 계속하기 불가능하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하고 우리로 자고하게 하거나 자신을 의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분명히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성경의 취지는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다윗에게 범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은 자신을 의뢰하는 정신과 자기를 높이는 정신이었다. 아첨과 권세와 사치의 미묘한 유혹이 다윗에게 영향을 미쳤다. 주위의 민족과의 교제도 역시 악한 감화를 끼쳤다. 동방의 통치자들 사이에 성행하던 풍습에 따르면 신하들에게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왕이 행했을 때에는 정죄하지 않았으며 왕은 신하가 행하는 그런 자제를 행할 의무가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은 죄의 흉악성에 대한 다윗의 생각을 무디게 했다. 그리하여 다윗은 겸손히 여호와의 능력을 의지하는 대신에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기 시작하였다. 사단은 영혼을 유일한 능력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게 되자마자 인간의 사악한 육체적 욕망을 충동시키고자 할 것이다. 718 원수는 일을 돌발적으로 하지 아니한다. 원수는 처음부터 몹시 놀랄 만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리에 원칙의 요새를 침식하는 것이다. 이 일은 겉보기에는 매우 적은 일처럼 보이는 것들 즉 하나님께 충실하고 당신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게을리 하는 일이나, 세상의 풍속과 행습을 따르는 경향에서 시작한다.

암몬 사람과의 전쟁을 종결짓기 전에 다윗은 군대의 지휘권을 요압에게 맡기고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아람 사람들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항복했고 암몬 사람을 완전히 정복하는 일도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다윗은 승리의 성과와 그의 지혜롭고 유능한 통치에 대한 존경에 둘러싸여 있었다. 유혹하는 자가 다윗의 마음을 점령할 기회를 포착한 것은 그가 안일하고 방심하고 있던 이 때였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취하여 당신과 매우 밀접한 교제를 하게 하시고 그에게 그처럼 큰 은총을 나타내셨다는 사실이 그의 품성을 흠없이 보존해야 할 가장 큰 동기가 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안일과 스스로 안심하는 상태에 빠져 하나님 의지하기를 잊어버리므로 사단에게 굴복하고 그 자신에게 범죄의 오점을 남기게 됐다. 하늘이 임명한 민족의 지도자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집행하도록 택하신 다윗은 스스로 그 계명을 유린하였다. 행악자들에게 두려움이 되었어야 할 그는 자신의 행위로 행악자들의 손을 강하게 하였다.

다윗은 그의 초기 생애의 온갖 위험 중에서 양심적으로 성실하게 그의 사정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다. 여호와의 손길이 그를 인도하여 그의 발길에 놓였던 무수한 올무를 안전히 지나가게 하셨다. 그러나 이제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은 그는 하늘의 도움과 지도를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힘으로 범죄로 인하여 빠져들어간 위험에서 자기 자신을 구출하고자 노력하였다. 절세의 미모로 왕에게 올무가 되었던 밧세바는, 다윗의 가장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장교 중에 하나인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였다. 다윗의 범죄가 알려질 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간음한 자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그같은 치욕을 당한, 자부심이 강한 무사는 왕의 생명을 취하거나 나라에 대한 반란을 일으켜 복수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윗이 자기의 죄를 숨기기 위하여 취한 모든 노력이 다 소용없는 일임이 밝혀졌다. 다윗은 자신을 사단의 권세에 팔았다. 위험은 그를 둘러 있었고 그의 앞에는 죽음보다 더 쓰라린 치욕이 있었다. 719 피할 길이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보여서 그는 절망 중에 신속히 간음죄에 살인죄를 첨가했다. 사울의 멸망을 계획했던 사단은 다윗도 역시 멸망으로 이끌어 가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비록 유혹은 달랐으나 그 모든 것은 다 같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도록 인도하였다. 다윗은 만일 우리아가 전쟁터에서 원수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면 그의 죽음의 책임을 왕에게서 찾지 않을 것이며 밧세바는 자기의 아내가 되는 데 걸릴 것이 없을 것이고 의심도 피할 수 있고 왕의 명예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우리아는 자기 자신의 사형 집행 영장을 가지고 가는 자가 되었다. 왕은 우리아의 손을 빌어 요압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명했다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저로 맞아 죽게 하라”(삼하 11, 12장 참조). 이미 함부로 사람을 죽인 죄로 물들여진 요압은 왕의 명을 순종하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우리아는 암몬 자손의 칼에 죽임을 당하였다.

이제까지 통치자로서의 다윗의 기록은 어느 군주도 필적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다윗에 대하여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하”(삼하 8:15)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성실함은 온 민족의 신뢰와 충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을 악한 자에게 복종시킴으로 인하여 그는 한동안 사단의 대리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지위와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자기의 권위에 복종하는 자의 영혼을 파멸시키라는 요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보다도 왕에게 더 충의를 표했던 요압은 왕의 명을 따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다.

다윗의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하도록 그것을 행사해야 하였다. 그가 하나님의 율법에 반대되는 것을 명했을 때에 그것을 순종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롬 13:1)나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반대되는 권세에 순종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다스림을 받아야 할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고 하였다.

그의 명령이 집행되었다는 보고를 다윗에게 보낼 때에 요압이나 왕이 연루되지 않은 것처럼 매우 주의 깊은 말을 사용하였다. 요압이 “그 사자에게 명하여 가로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에게 고하기를 마친 후에 혹시 왕이 노하면…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사자가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의 모든 보낸 일을 고하였”다.

720 왕의 대답은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저를 담대케 하라” 하였다.

밧세바는 그녀의 남편을 위하여 관습상 호곡(號哭)하는 기간을 준수하였다. 그 기간의 끝에 “다윗이 보내어 저를 궁으로 데려오니 저가 그 처가 되었”다. 자기의 생명이 위태한 때에라도 그의 고운 양심과 명예에 대한 고상한 의식을 잃지 아니하고,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지 않았던 그가 자기의 가장 충성스럽고 가장 용맹스러운 무사를 욕보이고 살해한 후 자기의 죄악의 보상을 방해받지 아니하고 향락하기를 바랄만큼 타락했다. 슬프다! 어찌하여 정금이 광채를 잃었는고! 어찌하여 최고의 정금이 변했는고!

태초부터 사단은 범죄하면 이익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해 왔다. 천사들도 그런식으로 유혹했고 아담과 하와도 그 방법으로 유혹하여 범죄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방법으로 군중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을 순종하는 길에서 떠나도록 하고 있다. 범죄의 길은 바람직하게 보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잠 14:12)다. 대담하게 이 길에 들어섰다가 죄의 결과가 얼마나 쓰라린 것임을 알고, 일찍 거기를 떠나는 자들은 행복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셔서 다윗을 죄악의 기만적 대가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을 당하도록 버려두지 아니하셨다.

또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필요가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밧세바에 대한 다윗의 범죄가 알려지고 다윗이 우리아의 죽음을 계획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일어나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모욕을 당하셨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은총을 베푸시고 그를 높이셨으므로 다윗의 죄는 하나님의 품성을 잘못 드러내었고 당신의 성호에 욕을 돌렸다. 한편으로는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경건의 표준을 낮추고, 많은 사람들의 심중에 죄에 대한 증오심을 둔화시켰고 다른 편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공경하지도 않는 자들에게 대담하게 범죄할 구실을 주었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책망의 기별을 전하라는 명을 받았다. 이것은 매우 혹독한 기별이었다. 이와 같은 책망을 받고도 책망한 자로 하여금 반드시 죽음으로서 그 값을 치르게 하지 않을 군주는 거의 없었다. 721 나단은 굽히지 않고 하나님의 선고를 전했으나 왕의 동정심을 끌고 그의 양심을 환기시켜 자기의 입술로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그와 같은 천래의 지혜를 사용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의 권리를 수호하는 자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다윗에게 호소하면서 선지자는 제거되어야 할 악과 압제에 대한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말했다.

나단은 말하기를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가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고 하였다.

왕은 분노하여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삼하 12:5, 6)고 부르짖었다.

나단은 왕을 주목한 후 손을 하늘로 쳐들고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엄숙히 선언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라고 말하였다. 다윗처럼 범죄자들이 저희 죄를 사람들에게 감추려고 시도하고 저희 악한 행위를 인간의 안목과 지식에서 영원히 덮어두려고 노력할지 모르나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 10:26).

나단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72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였)느니라…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선지자의 견책은 다윗의 마음을 움직여 양심을 일깨웠고 그의 죄는 흉악한 그대로 모두 나타났다. 그의 영혼은 굴복되어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다. 떨리는 입술로 그는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행한 모든 악은 모두 다 해받은 자들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다윗은 우리아와 밧세바 양인에게 극악한 죄를 범하였고 그는 이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더욱 그를 괴롭힌 것은 그 죄가 하나님께 범한 죄라는 것이었다.

비록 이스라엘 중에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사형에 처할 사람이 없지만 다윗은 자기가 범죄하고 용서받지 못했으므로 하나님의 신속한 심판으로 끊어짐을 당하지 않을까 하여 떨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에게 기별을 보내어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의는 유지되어야 하였다. 사형 선고는 다윗에게서 그의 범죄의 아이에게로 전가되었다. 그리하여 왕에게 회개할 기회가 주어진 바 되었으나 자기 아들의 고통과 죽음이 그에게 자신의 죽음보다 훨씬 더 쓰라린 형벌이 되었다. 선지자는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고 말하였다.

그의 아이가 병들었을 때에 다윗은 금식하면서, 깊이 겸비하고 그 생명을 위하여 탄원하였다. 다윗은 왕의 예복을 벗고 왕관도 벗어 두고 여러 날과 밤을 땅에 엎드려 애끊는 슬픔으로 자기의 죄 때문에 고통당하는 무죄한 아이를 위하여 간구하였다.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였다. 때때로 사람이나 성읍들에 형벌이 선고되었을 때에 겸비하고 회개함으로 그 형벌이 물러가기도 했었고, 신속히 용서하시고 항상 자비스러운 하나님께서 화평의 사자들을 보내시기도 했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용기를 얻은 다윗은 그 아이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굽히지 않고 탄원하였다. 아이가 죽은 것을 알자 그는 침착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복종하였다. 스스로 당연하다고 선언한 보응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한 다윗이 위로를 받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다윗의 타락의 역사를 읽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왜 이런 기록을 공개했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하늘이 그처럼 크게 영예롭게 한 자의 생애에서 이 어두운 대목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옳다고 보셨을까?”라고 질문한다. 선지자는 다윗을 책망하는 말에서 다윗의 죄에 관하여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다고 선언하였다. 후세대 이방인들은 이 어두운 오점을 가지고 다윗의 성품을 지적하면서 의기양양하고 조롱하는 뜻으로 “이 사람이 하나님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고 부르짖어 왔다. 723 그리하여 신앙은 비난을 당하였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은 모독을 당했으며 영혼들은 불신에 굳어졌고 많은 사람들은 경건의 가면을 쓰고 범죄하기에 담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윗의 역사가 범죄를 찬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불리운 것은 그가 하나님의 권고를 따라 행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범죄했을 때에 그는 그렇게 인정받을 수 없었고 그가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올 때까지 그러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고 분명히 선언했다. 또한 여호와께서도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겼”으니,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다윗이 죄를 회개하고 여호와께로부터 용서와 가납하심을 받았으나 그는 자신이 심은 씨로부터 해로운 수확을 거두었다. 그와 그의 집에 내린 형벌은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신다는 것을 증거한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섭리로써 다윗을 그의 원수들의 모든 음모에서 보호하시고 직접 사울을 제지하는 일을 행하셨다. 그러나 다윗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여호와께서는 결단코 죄악을 시인하실 수 없으셨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사울의 적의에서 보호하셨지만 그가 지은 죄의 결과로부터 그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능력을 행사하실 수는 없으셨다.

다윗 자신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다. 그는 자기의 죄와 멀리까지 미칠 그 결과를 의식하고 상심하였다. 그는 자기의 신하들의 목전에서도 천하게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까지 그가 번영한 것은 여호와의 계명을 양심적으로 순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죄를 알고 있는 그의 신하들은 더욱 거리낌 없이 범죄하게 될 것이다. 자기 가족들에 대한 자신의 권위가 약해지고 아들들에게 존경과 순종을 요구할 권위도 약화되었다. 그가 마땅히 죄를 정죄해야 할 때에도 자신의 범죄를 의식하고 그는 침묵을 지켰다. 그로 인해 그의 집에서 공의를 집행해야 할 그의 팔을 약화시켰다. 그의 악한 모본의 감화가 그의 아들들에게 끼쳐졌고 하나님께서도 그 결과를 막으려 하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되어지는 대로 흘러가도록 버려두셨으며 그리하여 다윗은 격렬한 징벌을 받았다.

타락한 후 온 일 년 동안 다윗은 표면상으로는 안전히 거하는 것처럼 보였고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신다는 아무런 외적 증거도 없었다. 724 그러나 하나님의 형벌이 그에게 박두하고 있었다. 형벌과 보응의 날은 신속하고도 분명히 다가오고 있었으며 그가 아무리 회개할지라도 그의 온 지상 생애를 어둡게 할 고민과 수치를 막을 수 없었다. 다윗의 예를 들어 자신들의 죄의 악함을 경감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성경의 기록에서 범죄의 길은 혹독한 길임을 배울 것이다. 비록 저희는 다윗처럼 악한 길에서 돌아선다 할지라도 죄악의 결과는 이 세상에서도 쓰라리고 견디기 어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범죄의 역사를 비록 당신으로부터 크게 축복과 은총을 받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안전하다고 느끼고 깨어 있어 기도하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삼고자 하셨다. 그같은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계획하신 교훈을 겸손히 배우려고 노력한 자들의 생애에서 입증되어 왔다. 각 시대를 통하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은 유혹자의 세력으로부터 오는 위험들을 깨닫게 되었다. 여호와께로부터 그처럼 크게 존귀히 여김을 받았던 다윗의 타락은 그들의 마음에 자신을 믿지 않도록 일깨워 주었다.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만이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을 보호하실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 안에 그들의 능력과 안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사단의 영역에 첫발을 들여놓기를 두려워하였다.

하나님의 선고가 그에게 선언되기 전에도 다윗은 범죄의 열매를 거두기 시작하였다. 그의 양심은 평안하지 않았다. 다윗이 그 때에 당한 정신적 고통을 시편 32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시 32:1~4).

하나님께로부터 책망의 기별이 다윗에게 이르렀을 때에 다윗은 회개의 표현을 시편 51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725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시 51:1~14).

그리하여 이 이스라엘 왕은 성가로 그의 백성의 공중 회집에서, 궁궐 앞에서, 제사장들과 재판관들과 방백들과 무사들로 이 노래를 부르게 하여 먼 후세대까지 자기의 타락에 대한 지식을 보존하도록 했다. 이스라엘 왕은 자기의 범죄와 회개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용서에 대한 자기의 희망을 자세히 말했다. 그는 자기의 죄악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그의 타락의 슬픈 역사로 교훈을 받을 수 있기를 갈망하였다.

다윗의 회개는 성실하고 깊은 회개였다. 자기의 죄악을 변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에는 경고된 형벌을 피하려는 욕망이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죄의 흉악함과 자기 영혼의 더러움을 보고 죄를 미워하였다. 그가 기도한 것은 용서만을 얻고자 함이 아니요 마음의 정결을 얻기 위함이었다. 다윗은 절망 중에 투쟁을 포기하지 아니하였다. 회개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용서와 가납하심의 증거를 보았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6, 17).

726 다윗은 비록 넘어졌으나 여호와께서는 그를 일으키셨다. 다윗은 이제 타락하기 전보다 훨씬 더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고 이웃들에게 동정적이었다. 죄에서 해방된 기쁨을 다윗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 (시 32:5~7).

많은 사람들은 저희 보기에는 훨씬 덜 악한 죄처럼 보이는 사울은 거절하시고 매우 큰 죄를 범한 다윗은 아끼신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낮추고 죄를 자백한 반면에 사울은 책망을 멸시하고 마음을 굳게 하여 회개하지 아니하였다.

다윗의 역사에서 이 대목은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의미심장한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투쟁과 시험, 그리고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관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힘 있는 예증의 하나이다. 각 시대를 통하여 이것은 범죄하여 그들의 죄악의 짐에 눌려 몸부림치는 영혼들에게 용기를 주는 근원임이 입증되었다. 범죄하고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 하려던 무수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윗이 자기의 범죄로 고통을 당했다 할지라도 성실히 회개하고 자복함으로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았던 일을 기억하고 그들도 역시 회개할 용기를 가지고 다시 하나님의 계명의 길로 행하려고 노력하였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다윗처럼 겸비하게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희망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허락들을 받아들인 자는 용서를 받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참으로 회개하는 영혼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와 같은 약속을 주셨다.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사 27:5).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